서  언 ( 序  言 ) 

  '사람되고 학문닦자'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선생의 한글서예 교본에 실린 구문(句文) 중 하나이다. 먼저 사람이 되고 그리고 학문을 닦으라는 말이다.  사람의 탈을 썼다고 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 내포(內包)된 말이다.  사람은 예(禮)를 알고 실천해야 참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으로서의 예(禮)를 배워 알고 지키는 것을 우선(于先)으로 하고 학문을 닦아야 한다.

  예(禮)는 곧 법(法)이다. 사람은 공동체(共同體) 내에서 살아가야 하니 질서를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을 내 입장(立場)과 동일시(同一視)해야 한다. 이것이 예(禮)이며, 상호(相互) 예(禮)를 준수(遵守)하지 않으면 분란(紛亂)이 생겨 공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禮를 준수(遵守)하기 위해 법(法)이 생긴 것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면 예(禮)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만 세간(世間)에서는 부부 간에도 禮가 필요하고 가족 내에서도 이웃 간에도 친구 간에도 내가 몸 담은 사회에서 禮는 필수(必須)적인 것이다.  禮가 어두운 나라는 비록 경제대국이라도 선진국이 될 수가 없고, 禮가 불충(不忠)한 가정(家廷)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富)를 이루었더라도 화평(和平)할 수가 없으며 그러한 가정에서는 아무리 학력이 높고 지위가 높아도 바른 사람이 나기는 어렵다.

  과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불리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예(禮)가 실종(失踪)되어가고 있다. 미풍양속(美風良俗)과 이윤(彛倫)이 준완(蠢玩)하여 윤상(倫常)은 무너져가고 있다. 그 원인은 일제 식민생활(日帝植民生活)을 비롯하여 해방 후 혼란으로 이어진 근대사의 굶주림과 혼탁(混濁)한 생활 과정에 무분별(無分別)한 서구문물(西歐文物)까지 급속(急速)으로 도입(導入)되고 농업국가에서 공업국으로 전환(轉換)되면서 대가족제에서 핵가족화 됨에 따라 진정한 삶의 의미(意味)는 깨닫기 어렵고 오직 자신의 치부(致富)를 위해 매진(邁進)하는 생활자세로 퇴락(頹落) 되었으며, 자녀교육 또한 예(禮)를 갖춘 참사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치부(致富)를 통해 명예(名譽)가 아닌 이름나기 쪽으로 치달은 결과 현실에 이르렀다. 빈곤(貧困)에서 헤어나 부(富)를 이루는데 급급하고, 그릇된 명예를 쫓아 사람되기를 거부(拒否)하는 추세(趨勢)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른 것이다. 교육열이 높다 하나 앞을 올바로 내다볼 줄 모르는 무작정(無作定)의 교육열일 뿐이다. 사회(社會)의 수요(需要)를 가름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소질(素質)을 고려(考慮)한 국가와 사회에 기여보비(寄與補裨)할 수 있는 교육. 즉, 소질(素質)과 사회기여(社會寄與)와 생계(生計)를 종합 참작(參酌)한 교육이라야 하나, 미련한 부모의 욕심이 자녀들의 정신을 혼탁(混濁)으로 내몰고 참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헛된 삶을 살도록하고 있다. 고학력자가 자기 할 일은 찾지 못하고, 또는 파산자(破産者)로 전락(轉落)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는가?.

  지금은 우리나라가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빈민국(貧民國)은 아니다. 지난 60,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정책(富國政策)과 경제계 인사들의 활약(活躍)에 힘입어 지금은 경제선진국으로 도약(跳躍)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이윤(彛倫)은 준완(蠢玩)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인이 이에 앞장섰고 부(富)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뒤따르고 청소년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예(禮)는 사정없이 팽개쳐져 이제는 선진국(先進國) 소리 듣기는 묘연(杳然)해지고 말았다. 이제 부터는 인간교육의 회복(回復)이 절실(切實)한 때이다. 부모들은 세상의 변동추세를 옳게 진단하고 자녀들의 소질을 잘 헤아려 굳이 치부(致富)와 헛된 명예 추구(名譽追求)로 어렵고 허망(虛妄)한 삶을 살아가도록 할 것이 아니라, 정서(情緖)와 덕(德)을 쌓으며 소질(素質)을 계발(啓發)하여 사람다우면서도 보람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配慮)해야 한다.

  우리 조상님들의 후세 교육은 참으로 훌륭했다. 유교(儒敎)는 신앙(信仰)이 아니고 철학(哲學)이다. 물론 본 학습자료에는 시대가 다른 만큼 현세(現世)에는 합당(合當)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당시로서는 지극(至極)히 마땅한 내용이고 마땅한 방법이었다. 당시의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이해(理解)한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이며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리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은 공연(空然)한 말이 아니다.

   조상님들의 삶과 교육철학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교육자료인 동몽선습, 격몽요결 등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첩경(捷徑)이다. 한문이라 하여 어렵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우리말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한문과 한자 지식이 필수(必須)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실종(失踪)되어가는 예절(禮節)을 배우고, 마음의 수양(修養)을 쌓으면서 한문과 한자를 익히면 일거다득(一擧多得)의 효과(效果)를 볼 수 있으니 절대(絶對)로 고리타분한 옛 것이라 생각하고 배척(排斥)할 것이 아니다. 사자소학(四字小學)의 경우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알기쉽게 되어 있으니 한 문장 한 문장 숙지(熟知)해 나간다면 그에 따른 재미도 붙을 것으로 생각되어 컴퓨터로 익히기 쉽도록 제작하였다. 다만 한문 독해력이 박(薄)하여 해석이 문장의 본 뜻과 어긋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choi-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