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四君子)

  사군자(四君子)는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회화(繪畵)의 제재(題材)가 되는 매화(梅)·난초(蘭)·국화(菊)·대나무(竹)의 총칭으로서, 이 4가지가 초목이나 꽃 중에서도 기품 있고 고결한 군자와 같다 해서 붙여진 호칭. 많은 문인고사(文人高士)들이 이 4가지 소재를 즐겨 그림으로써 스스로의 청고(淸高)하고 돈아(敦雅)한 정취와 품격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림의 소재가 되기 훨씬 이전에 시문(詩文)의 소재로 등장하였다. "四君子"라는 총칭이 생긴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명(明)나라 때로 추정되는데, 매·난·국·죽의 순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순서에 맞추어 놓은 것이다. 회화(繪畵) 소재로서의 사군자는 대체로 당(唐)나라때 이미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북송(北宋) 시대부터 크게 유행하였다. 1167년에 나온 등춘(鄧椿)의 [화계(畵繼)]에 의하면 북송 때 이미 4가지 식물이 모두 묵화로 그려져 후대 문인묵화로서의 사군자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사군자화는 산수화나 인물화에 비해서 비교적 그리기가 간단하고 서예의 기법을 적용시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기화가(餘技畵家)인 문인들에게는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또한 서예의 필획 자체가 쓴 사람의 인품을 반영한다는 원리의 연장에서 사군자화도 그 화가의 인품을 반영한다고 믿어져 문인화의 가장 적절한 소재로 발달되었다. 중국에서 묵죽(墨竹)을 사대부의 화목(畵目)으로 발달시킨 학자는 북송의 소식(蘇軾)과 문동(文同)인데, 이들은 [흉중성죽(胸中成竹)]을 제창하여 성정(性情)의 의경(意境)을 추구하였으며,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송대(宋代) 문인삼걸(文人三傑)로 꼽힌다. 그리고 역시 북송의 승려화가인 화광중인(華光仲仁)은 묵매화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원(元)나라 때는 몽골족에게 나라를 잃은 한족(漢族)문인들 사이에서 지조(志操)와 저항의 표현으로 널리 애호되었으며, 문인화 이론이 한층 발달하였다. 한편 송나라 때부터 개별적인 화보(畵譜)를 통해 일반에게 보급되었던 사군자화는 청(淸)나라 초기 이후 총괄적인 화보가 발간됨으로써 더욱 널리 유행하였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송·원나라의 영향으로 사대부화가 생기기 시작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묵죽·묵매를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계층은 물론 화원(畵員)들도 사군자화를 많이 그렸다. 그리하여 15∼16세기부터는 매·죽의 그림이 청화(靑華)·진사(辰砂)·철사(鐵砂) 백자에 나타나고 난·국도 조금 늦게 백자의 표면그림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사군자화는 중국의 영향하에 발달되었으나, 김정희(金正喜)의 묵란과 묵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작가 개인의 특성이 잘 반영된 독자적인 양식이 수립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동양화의 정신과 기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화목으로 여겨 기본적 수련과정으로서도 많이 그려지고 있다. 근래에 서화계에서는 사군자(四君子)를 서예의 한 부분으로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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