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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부족함을 늘 지니고 있음에 감히 여기서 서예반을 지도한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만, 한편 긍지를 가지고 지난 날을 상기하여 함께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해소하며, 여러분의 따뜻한 배려에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래 내용은 서예에 대하여 몇몇 곳에서 논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간략하게 저의 견해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CD는 서예 기초학습서 중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 또는 제작 수록하여 연결하였으니 참조하셔서 보탬이 되시기 바라며, 혹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편달 바랍니다.

서 예 에   대 하 여

  서예란 붓 또는 송곳 따위로 종이, 돌, 목판, 비단 등의 면에 글을 쓰는 것이 모두 서예일 수 있으나, 먹물을 매개로하여 붓으로 화선지에 쓰는 것을 주로 말하며, 점과 선(획)의 태·세와 장·단, 필압의 강·약과 경·중, 운필의 지·속, 먹의 농·담, 글자 상호간의 비례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를 이루어 내는 것이 진정한 서예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서예는 한국 중국 일본에 국한할 뿐, 서양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심미적 대상으로 쓰이고는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서예라고는 할 수 없다.

서예의 특징
  1. 점과 선의 구성과 비례, 균형에 따라 공간미가 이루어진다.
  2. 필순과 글귀에 따라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획, 한 자로부터 한 작품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과정에서 운필의 강약·지속 등 율동미가 전개된다.
  3. 서예는 구체적인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소재로 일정하지 않은 추상적인 형을 전개하는 것이다.
  4. 먹은 검정색이지만 오채를 겸하여 농담·윤갈·선염·비백 등이 운필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타나 영묘한 감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하면 서예는 단순하게 점과 선으로 구성되는 글자들을 정해진 바탕 위에 사전 머리속에 구상한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소재는 단순하고 형태 또한 추상적이나 그 과정은 먹을 갈 때부터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하며, 쓰는 과정에서 심중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어 보는 이의 감성을 자아내고, 묵흔의 특별함까지 곁들인 작품은 작자의 순간적 감정에 의하여 천변만화를 이루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서예의 단순성과 무궁성
    앞서 말했듯이 서예는 먹을 갈아 유연한 붓으로 흰 바탕(화선지)에 표현하는 예술이므로 재료가 간단하며, 소재 또한 문자의 결합과 나열로 성립되는 것이니 간단하다.
    그러나 그 예술성은 점·획에 윤·갈이 있고, 선의 굵기와 방향·지속·연속성 등의 변화가 있으니 모양은 비록 화려함이 없고 단순하나, 소박미와 함께 내포된 무궁한 예술성을 맛볼 수 있다. 우리 전통문화 중에도 서예와 마찬가지로 간단하고 소박한 것이 많다. 전통 의복인 흰 옷이 그렇고, 고려의 청자·조선의 백자가 그러하며, 반다지와 옷장, 목기류의 자연적 소박미가 서예와 같으니, 이러한 것은 우리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 문화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 문화는 표현은 단순·소박하면서도 그 내면 세계는 무궁하다 하겠다.
    서예는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예술인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가장 깊은 정신세계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회화와 같이 만물의 실제 형상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고, 단지 점과 선의 변화로 함축된 상징·암시 등 예술적 수법을 실현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나름대로 쓰는 사람의 본성과 쓰고 있을 당시의 심경이 내포되어 있다.
    중국의 종요(후한시대 서법 대가)가 필법을 말함에 "필적이라고 하는 것은 계(경계)이고, 유미(유출되는 미)는 사람이다" 했으니, 필적이란 선이 만드는 경계에 지나지 않으나 그 선으로부터 유출하는 미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의미한다. 선은 결코 복잡한 것은 아니나 인간의 심미이념과 정조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 장회관(당나라 때 서예 대가)은 문자를 논함에 "문장은 몇 개의 문자를 연결하여 그 뜻을 전하는 것이나 서는 한 자라도 충분히 그 마음을 나타낼 수 있으니 실로 절약의 도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뜻을 전하는 데는 몇 개의 단어나 구가 필요하나 서예에서는 글자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심정이나 정신을 표현할 수가 있으므로 서예는 실로 극히 단순한 생략의 예술인 동시에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표현할 정도로 작가의 심중이 잘 나타나는 고도의 예술이다.
    고전미학에서는 구성 상황에 따라 단상미·개체미·종합미로 분류하는데, 이는 건축이나 회화 뿐만 아니라 서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단상미란 개체에 부속한 일부분이 가지고 있는 미이고, 개체미는 한 개의 독립된 조립체가 표출하는 미이며, 종합미는 이 모든 조립체가 혼합하여 나타내는 미로서, 그 모두가 혼합 융화하여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의 심층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미적 개념에서 서예를 말하면, 단상미는 점획의 미로서 필획의 태·세·장·단·지·속·실·허의 연결·직·곡 흑의 농·담 등이 각기 심미효과를 나타내는 것이고, 개체미는 한 자를 구성하는 결구의 묘미이며, 종합미는 화선지 한 장에 이 모두를 혼합된 형태로 표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깊숙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표출되는 효과는 개성에 따라 다르고, 장소와 시기 등 상황에 따른 감정에 의해 다르고, 개인별 숙련 정도에 따라 다를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서법과 학서정신
    서예를 말할 때 우리는 서예라 하고 중국은 서법, 일본에서는 서도라고 칭한다. 이 단어들의 의미는 글씨가 발전해 오는 동안 고인들이 터득한 서법을 익히고 도를 닦는 마음으로 서에 임하여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임을 뜻한다. 따라서 글씨를 쓸 때는 한갓 흥미나 손재주에 의한 아름다움의 창조에만 급급하지 말고, 글씨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정서를 함양하며 나아가 인격을 높이는데 근본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서예 학습에서 가장 우려하여 금하는 것이 법을 모르고 글자의 모양만 닮으려 하는 것으로 이를 두고 헛된 먹장난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니 학습에 있어서 바른 법도의 준수를 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서법을 완성한 후에는 법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은 학습과정에서는 반드시 모든 법을 준수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학습을 해야만 서의 진정한 법이 무엇인지를 차츰 깨닫게 되고, 완성도에 이르면 옛 사람의 법 테두리를 벗어나 한층 높은 경지나 색다른 법을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이며, 제법이란 서법에서의 용필· 운필 · 결구등의 기본법은 물론, 고첩의 임서에서 고인의 심법을 깨닫는 것 까지를 망라한 말이다.
    서법은, 문자가 생기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서의 방법을 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여 지켜야 할 사항이 곧 서법이 된 것이니, 한 때 어느 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 달통한 고인들에 의하여 후인에게 전수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또 용필재심(用筆在心)이니 심정즉필정(心正則筆正)이라는 말은, 서는 곧 심화요 심경임을 뜻하는 것이다. 서예는 이러한 법과 정신이 결할 수 없는 일종의 도이기에, 옛부터 인재를 선발하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나 육예(예 · 악 · 사 · 어 · 서 · 수)의 하나로 선택했던 것이다.
    누차 언급했듯이 글씨는 그 사람의 표현이다. 글씨만 보아도 그 사람의 성격과 심경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글씨를 함부로 쓰거나 잘못 배워서 그릇되게 쓰면 자신의 인격의 그릇됨이 그대로 나타나고, 정중한 마음으로 서법을 준수하여 배우고 익힌다면 심신이 윤택해지고 이에 따라 훌륭한 서작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