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제도(制度)

1. 관제(官制 : 政府組織)
    (1) 동반(東班:文官)
         ● 경직(京職:內職)
              ◎ 의정부(議政府) : 최고 정무기관(最高政務機關)
                   - 영의정(領議政) → 首相
                   - 좌의정(左議政)·우의정(右議政) → 副首相
                   - 좌참찬(左參贊)·우참찬(右參贊) → 三相의 補佐役
              ◎  승정원(承政院) → 王의 비서기관(秘書機關)
              ◎  승문관(承文館) → 교린문서(交隣文書)의 관장기관(管掌機關)
              ◎  홍문관(弘文館) → 문한(文翰) 및 논사기관(論思機關)
              ◎  예문관(藝文館) → 사령(辭令)의 제찬지관(製撰機關)
              ◎  춘추관(春秋館) → 시정(時政)의 기록기관(記錄機關)
              ◎  의금부(義禁府) → 특별사법기관(特別司法機關)
              ◎  사헌부(司憲府) → 시정(時政)의 논주(論奏), 백관(百官)의 규찰(糾察), 풍속(風俗)의 숙정기관(肅正機關)
              ◎  사간원(司諫院) → 왕명(王命)에 대한 간쟁(諫) 및 논박기관(論機關)
              ◎  경연(經筵) → 왕이 문신(文臣)과 더불어 경사(經史)와 고금치란(古今治亂)에 관하여 연구(硏究)·토론
                                       (討論)하는 자리임.
              ◎  한성부(漢城府) → 수도관장기관(首都管掌機關)
              ◎  개성부(開城府) → 구도관장기관(舊都管掌機關)
              ◎  육조(六曹) → 국무분장기관(國務分掌機關)
              ◎  이조(吏曹) → 문관(文官)의 선임(選任)과 훈봉(勳封), 관원(官員)의 성적고사(成績考査) 밍 포폄(褒貶)에
                                       관한 사무.
              ◎  호조(戶曹) → 호구(戶口), 공부(貢賦), 전량(田糧) 금화(金貨)에 관한 사무.
              ◎  예조(禮曹) → 예의(禮儀), 제향(祭享), 조회(朝會), 교빙(交聘), 학교(學校), 과거(科擧)에 관한 사부.
              ◎  병조(兵曹) → 무선(武選), 군무(軍務), 의위(儀衛) 사역(使驛), 병갑(兵甲) 기장(器仗) 문호관약(門戶
                                       管鑰)에 관한 사무.
              ◎  형조(刑曹) → 법률(法律) 소송(訴訟) 형옥(刑獄) 조예(奴隸)에 관한 사무.
              ◎  공조(工曹) → 산택(山澤) 공장(工匠) 영선(營繕) 도야(陶冶)에 관한 사무.
         ● 외직(外職:八道)
              ◎ 감영(監營 : 觀察使·監司) → 8감관(八監營)
                   - 부(府 : 尹·使) → 4부. 4대도호부(大都護府) 44도호부(都護府)
                   - 목(牧使) → 20목(牧).
                   - 군(郡守) → 82군(郡)
                   - 현(縣:令·監)175현(縣)
              ◎ 영리(營吏:六房)
                   - 이방(吏房) → 인사(人事) 비서(秘書) 기타(其他)의 사무관장(事務管掌)
                   - 호방(戶房) → 호구(戶口) 공부(貢賦) 전곡(田穀)등의 사무관장.
                   - 예방(禮房) → 예악(禮樂) 제사(祭祀) 연향(宴享) 학교(學校) 등의 사무 관장.
                   - 병방(兵房) → 군무(軍務) 우역(郵驛)등의 사무관장.
                   - 형방(刑房) → 법률(法律) 소송(訴訟)등의 사무관장.
                   - 공방(工房) → 재식(栽植) 주차(舟車) 공장(工匠) 영선(營繕) 등의 사무 관장.
                 ※ 이서(吏胥) 밑에 통인(通引) 또는 지인(知印)이 있어 관인(官印)을 보수(保守)하며 육방(六房)의 사무를
                     견습(見習)함. 그밖에 사령(使令) 관노(官奴) 관비(官婢) 일수(日守) 기생(妓生) 등이 있음.
    (1) 서반(西班:武官)
         ● 경직(京職:內職)
              ◎ 중추부(中樞府 → 소장사무(所掌事務)가 없음.
              ◎ 5위도총부(五衛都摠府)
                   - 중위(中衛) → 의흥위(義興衛:中部所在)
                   - 좌위(左衛) → 용양위(龍驤衛:東部所在)
                   - 우위(右衛) → 오분위(虎賁衛:西部所在)
                   - 정위(前衛) → 충좌위(忠佐衛:南部所在)
                   - 후위(後衛) → 충무위(忠武衛:北部所在)
                   - 훈련원(訓鍊院) → 군사교육훈련소(軍事敎育訓鍊所)
         ● 외직(外職)
              ◎ 각도 병영(各道 兵營 : 兵使) → 진(鎭 : 僉使)
              ◎ 각도 수영(各道 水營 : 水使) → 진(鎭 : 僉使)

2. 관작(官爵)과 품계(品階)
    (1) 봉호(封號)와 시호(諡號)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국왕으로부터 공신(功臣)이란 훈호(勳號)가 내려지거나 ○○君으로 봉군(封君)
     하게 되는 일이 있으며, 경(卿)·상(相)·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을 칭송하여 시호(諡號)가 추증(追贈)되
     는 일이 있다.
         ● 훈호(勳號) → 例 : 개국공신(開國功臣), 정사공신(靖社功臣)
         ● 가자(加資) → 例 : 숭록대부(崇祿大夫), 자헌대부(資憲大夫)
         ● 관직(官職) → 例 : 대제학(大提學), ○○판서(判書)
         ● 봉호(封號) → 例 :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 하원군(河源君)
         ● 시호(諡號) → 例 : 공숙(恭肅), 충렬(忠烈), 문충(文忠), 문혜(文惠)
    (2) 증직(贈職)과 수직(壽職)
         증직(贈職)은 종2품(從二品) 이상 관원의 부(父)·조(祖)·증조(曾祖) 또는 충신(忠臣), 효자(孝子) 혹은 학덕(學德)
     이 현저(顯著)한 사람에게 대하여 죽은 뒤에 관직(官職)·품계(品階)를 추증(追贈)하는 것이며, 수직(壽職)이란 매
     년 정월18세 이상의 관원 및 90세 이상의 서민(庶民)에게 은전(恩典)으로 주던 직품(職品)이다.
    (3) 영직(影職)
         영직(影職)이란 실제로 근무하지 않고 이름만을 빌리던 벼슬이기 때문에 차함(借啣)이라고도 한다.
    (4) 교지(敎旨)와 첩지(牒紙)
         ● 교지(敎旨) : 4품 이상 관원의 직첩(職牒 : 辭令狀)
         ● 첩지(牒紙) : 5품 이상 관원의 집첩
         ● 교지(敎旨) : 4품 이상 관원의 직첩(職牒 : 辭令狀)
         ● 전교(傳敎) : 임금의 명령 즉 하교(下敎)
         ● 제수(除授) : 추천(推薦)없이 왕이 직접 관원을 임명하는 것.
    (5) 관자(貫子)
         ● 금관자(金貫子)국왕(國王:上監)
         ● 옥관자(玉貫子(민짜:속칭 環玉)正·從一品대감(大監)
         ● 금관자(金貫子)正二品.대감(大監)
         ● 금관자(金貫子)從二品.영감(令監)
         ● 옥관자(玉貫子(彫刻)正三品堂上官.영감(令監)
         ● 흑각관자(黑角貫子)정당하관(正堂下官)이하.나리
    (6) 임만(任滿 : 任期)
         ● 당상관(堂上官)30삭(三十朔)
         ● 6품(六品)이상30삭(三十朔)
         ● 7품(七品)이하15삭(十五朔)
         ● 무록자(無祿者)12삭(十二朔)
         ● 관찰사(觀察使)12삭(十二朔 : 後日에는 二十四朔)
         ● 도사(都事)20삭(二十朔)
         ● 수령(守令)60삭(六十朔 : 後日 三十 ~ 六十朔)
         ● 미설수령(未守令)30삭(三十朔)
         ● 병사(兵使)24삭(理十四朔)
         ● 수사(水使)24삭(理十四朔)
    (7) 묘계(墓界)
         관원의 품계를 따라 정하던 묘소의 구역(區域)은 다음과 같다.
         ● 일품(一品  : 正·從) 분묘(墳墓)를 중심으로 사방 100보(一百步)
         ● 이품(二品  : 正·從) 분묘(墳墓)를 중심으로 사방 90보(九十步)
         ● 삼품(三品  : 正·從) 분묘(墳墓)를 중심으로 사방 80보(八十步)
         ● 사품(四品  : 正·從) 분묘(墳墓)를 중심으로 사방 70보(七十步)
         ● 오품(五品)이하 : 분묘(墳墓)를 중심으로 사방 50보(五十步)
         ● 생원(生員)·진사(進士) : 분묘(墳墓)를 중심으로 사방 40보(四十步)
         ● 서인(庶人) : 분묘(墳墓)를 중심으로 사방 10보(十步)
    (8) 봉사(奉祀)
         ● 문무관(文·武官) 6품(六品) 이상3대봉사(三代奉祀)
         ● 문무관(文·武官) 7품(七品) 이상2대봉사(二代奉祀)
         ● 서인(庶人)고비(考妣)의 1대봉사(一代奉祀))
     ※ 공신(功臣)의 경우 영구히 봉사(奉祀)하는 것을 "불조전(不祧典"이라하여 그 신주(神主)를 "불위(不位)"라
         한다.
    (9) 시사(時祀)
         ● 문무관(文·武官) 2품(二品) 이상四仲月 上旬(三獻)
         ● 문무관(文·武官) 6품(六品) 이상四仲月 中旬(三獻)
         ● 문무관(文·武官) 7품(六品) 이하四仲月 下旬(三獻)

3. 학제(學制)
    유학(儒學)을 전공하는 학교가 서울의 성균관(成均館)을 최고학부(最高學府)로 하여 경내(京內) 4개처(四個處)에 사부학당(四部學堂)과 각 지방의 목(牧)·부(府)·군(郡)·현(縣)에 향교(鄕校)가 있었고, 직업학(職業學)과 기술학(技術學)의 교육은 경향(京鄕)의 각 기관에서 이를 맡아 실시하였다.
    그리고 유도(儒道)를 닦는 선비(士)를 유생(儒生)이라 하며, 벼슬하지 않은 유생(儒生)을 유학(幼學)이라 일컬었고, 성균관에서 기거(起居)하는 유생을 태학생(太學生)이라 하였다.

 4. 과거제도(科擧制度)
    각 도감영(道監營)에서 행하는 향시(鄕試)나 중앙에서 행하는 생진과(生進科) 초시(初試)를 희흘강(熙訖講)이라 한다. 이 희흘강에 급제(及第)하면 희흘첩(熙訖帖)을 주는데, 이것이 있어야 생진과(生進科)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附與)된다.
    이 희흘강(熙訖講)을 초시(初試)라 하며 여기에 급제(及第)하면 "이초시·김초시"라고 불러준다 이리하여 각 지방에서 희흘강(熙訖講)에 급제(及第)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4년만에 한번씩 과거(科擧)를 보이는데, 4년1시(四年一試)를 식년시(式年試)라고 하며 子·卯·午·酉년에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원과(生員科)에서는 경서(經書)를 암송(暗誦)하게 하고 또 거기에 대한 뜻을 풀어보는 시험이다. 시험관에는 상시(上試:당시 判書級), 부시(副試:당시 參判級)가 있어 응시자(應試者)를 불러서 열 번이나 암송(暗誦)을 들어 보기도 하고, 잘 외우면 通·略·粗·不通의 4가지로 나누어 通은 2점, 略은 1점, 粗는 半점, 불통(不通)은 영(零)점으로 하여 총 14점 반(半) 이상에 달(達)하는 자를 급제(及第)로 한다. 이 생원과는 경서를 외우게 하므로서 강경과(講經科) 또는  치경과(治經科)라고도 부른다. 진사과(進士科)는 제술과(製述科)라고도 하며 본과시험(本科試驗)에서는 시험관들이 임석(臨席)하여 감찰(監察)들로 하여금 차작차필(借作借筆) 들을 못하게 엄중히 단속하는 한편, 제목을 내고 운자(韻字)를 정하여 시(詩)를 짓게하여 시간 엄수토록 명한다. 이에 응모자(應募者)들은 각자 준비된 필묵(筆墨)으로 시(詩)를 지어 장지(狀紙)에 18수(首)를 써서 봉하여 시험관에게 내고 퇴장한다.
    그러면 시험관들은 그 시축(試軸)을 모아서 우선 글만 잘 지었으면 상상(上上) 중상(中上) 상중(上中) 상하(上下)이상이중(二上二中) 이하(二下) 삼상(三上) 삼중(三中) 하하(下下) 이렇게 정한 뒤 상상(上上)은 9점, 하하(下下)는 1점으로 등분하여 채점(採點)한다. 그리하여 대개 二下(4점)까지를 택하여 급제(及第)로 정했다. 이런 식으로 생원(生員), 진사(進士) 각 100명씩 200명을 뽑아서 발표하였으며 이 급제자의 발표를 방(榜)이라 하였다. 그러니까 4년에 한번씩 100명씩의 생원과 진사를 배출(輩出)하였던 것이다. 이 생진과(生進科)에 급제(及第)한 자 가운데 대과(大科) 즉 문과(文科)에 응시(應試)하려는 자는 성균관(成均館)에 입학을 허가하였고, 그 다음 대과(문과)에 응사하려면 우선 대과초시(大科初試)에 급제(及第)하여야 하는 것인데, 문과초시(文科初試)에서는 관시(館試:成均館 학생)에서 50명, 한성시(漢城試)에서 40명, 향시(鄕試)로는 경기에서 20명, 충청·전라도에서 각 25명, 경상도에서 30명, 강원·평안도에서 각 15명, 황해·함경도에서 각 10명씩을 뽑아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이렇게 생진과(生進科)에 급제(及第)한 사람으로 성균관(成均館)을 거치지 않고도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賦與)하여 총 240명이 대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인원을 정해 놓았다. 대과(大科)에 제 1차 시험을 초장(初場)이라 하는데 거기에서는 시부(詩賦)를 짓는데 마치 진사과에서 행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경서암송(經書暗誦)에 자신있는 사람은 제 1차 시험인 초장(初場)에 응시하고, 시부(詩賦) 짓는데 자신있는 사람은 중장(中場)에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대개는 초장(初場)에 응시하여 낙제(落第)한 사람이 중장(中場)에 응시하여 급제(及第)를 노리는 것으로 제 1차 시험인 장(初場)에서 16명, 제 2차 시험인 중장(中場)에서 16명, 그리고 양장(兩場)에서 성적이 우수하였으나 합격권내에 들지 못한 한 사람을 양장시험관이 회합하여 선정하는 것인데 이것을 생획급제(生劃及第)라 한다.
    이리하여 대과급제자 33명을 선정하는 것이다. 대과급제자 인원에 대하여는 아무리 성적이 좋다해도 33명 이상은 뽑지 않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 있으나, 성적이 나쁠 때에는 그 이하 30명 혹은 28명 이렇게 33명보다 적게 뽑을 수 있었다. 이렇게 대과급제자가 선정이 되면 최후로 전시(殿試)라는 것이 있었다.
    전시(殿試)에는 왕이 친히 임석하는 것이지만 최후의 시험이라는 뜻이다. 거기에서는 간단하게 대책(對策)이나 표(表)·전(箋)·잠(箴)·송(頌)·제(制)·조(詔) 중 어떤 것이나 일편(一篇)만 짓게 하는 것이니 지금으로 말하면 논문(論文)을 짓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전시(殿試)의 결과를 보아 33명의 등급을 갑·을·병 3등급으로 나누어 제일 잘 지은 사람을 甲이라 하여 3명을, 다음은 乙이라 하여 7명, 다음은 丙이라 하여 23명으로 정하는데, 이것을 갑·을·병 3科라 한다.
    제일 글을 잘 지은 이로 전시(殿試)에서 갑과(甲科)에 급제한 첫째되는 사람을 장원랑(壯元郞)이라 하고, 들째되는 사람을 방안랑(榜眼郞)이라 하며, 셋째되는 사람을 탐화랑(探花郞)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생진과(生進科)에 급제한 사람에게는 그 증서(證書)를 백지에다 써서 주는 까닭에 백패(白牌)라 하였고,  대과에 급제하면 홍색지(紅色紙)에 써주었으므로 홍패(紅牌)라 하였다. 생진과초시(生進科初試 : 熙訖講)에서 생원과(生員科), 진사과(進士科), 대과응시자격시험(大科應試資格試驗)인 대과초시(大科初試 : 館試·鄕試), 초장(初場 : 제1차試), 중장(中場 : 제2차試), 전시(殿試)까지 장원으로 급제한 재사(才士)로 암송(暗誦)과 뜻에 잘못이 없어 칠통(七通)을 하고 글짓기에도 상상(上上)으로 당선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왕이 불러 암행어사(暗行御史)로 삼았고 관계승진(官界昇進)도 빨랐다. 그러므로 과거에 응시하는 자는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다. 이상은 문사(文士)들에게 행하는 시험이고 다음은 무인(武人) 즉 군인에 대한 시험으로 무과(武科)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의 구별이 있다.
    무과초시(武科初試)도 문과초시(文科初試)와 같이 중앙과 각 道 監營에서 행하는데, 중앙(京畿포함)에서 70명, 경상도에서 30명, 충청·전라도에서 각25명, 강원·황해·함경·평안도에서 각 10명씩 선발하여 총 190명이 중앙에서 행하는 복시(覆試)에 응시하여 다시 그 중에서 28명을 뽑아 전시(殿試)에 응시토록하여 활(弓)을 쏘게 하는데, 제일 잘 쏘는 무사 3명을 추려 갑과(甲科)에 급제(及第)하게 하고 그 중 첫째가는 무사를 장원랑(壯元郞)이라 하고 둘째가는 무사를 방안랑(榜眼郞)이라 하고, 셋째가는 무사를 탐화랑(探花郞)이라 함은 문과나 다름이 없다. 그 다음 을과(乙科)에  5명, 병과(丙科)에  20명을 각각 선정한다. 이상 문과·무과는 소위 양반(兩班집 자제들에게 한하여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는 까닭에 중인(中人)이하 일반인은 응시해 볼 생각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다음 잡과(雜科)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중인(中人)들에게 보이는 과거(科擧)라 하겠다. 거기에 외국어(外國語)를 배워가지고 역관(譯官)노릇을 하는 역과(譯科)라는 것이 있어 그것도 초시(初試)에 한학(漢學:중국어) 23명, 몽학(蒙學:몽고어)·왜학(倭學:일본어)·여진학(女眞學:만주어) 등은 각각 4명씩 뽑아 다시 복시(覆試)에 가서 漢學(中國語譯官) 13명, 그 다음 蒙學(蒙古語譯官)·倭學(日本語譯官)·女眞學(滿州語譯官) 등은 각각 2명씩을 선발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문과대관(文科大官)의 수행원(隨行員)으로서 통역관(通譯官) 노릇을 하였다. 그 다음 의과(醫科) 산과(算科) 음양과(陰陽科) 율과(律科) 등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두 초시(初試) 복시(覆試)의 구별이 있었다. 이러한 모든 科擧(生進科,大科, 雜科)가 4년만에 한번씩 子,卯, 午,酉년에 시년과거(試年科擧)가 정기적으로 행하여졌다.
    그러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는 특별히 증광과(增廣科)라든지 또는 별시(別試), 왕이 성균관에 행차하였다가 거기에서 성균관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이는 알성과(謁聖科)라는 것이 있으니 이는 式年 외에 치르는 과거이다. 이 성균관에 왕이 행차하여 치르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알성급제라 하여 과거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급제로서 여기에서 장원급제하면 대개 암행어사로 불리우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었다.

    - 과시(科試)의 종류
  ⊙ 문과(文科) : 고제과거(古制科擧)의 하나. 문관(文官)을 뽑던 시험(大科) 현 고등고시와 같음.
  ⊙ 사마(司馬) : (榜目) 조선조때 시로 소과(小科)에 합격한 진사, 생원의 이름.
  ⊙ 무과(武科) : 고려조 때부터 무관을 뽑던 과거. 대개 3년마다 한번씩 식년(式年)에 무예(武藝), 병서(兵書)를 시험
                        (試驗)보였는데 初試, 覆試, 殿試의 세 段階가 있었음.
  ⊙ 증광(增廣 : 조선조 때 나라에 慶事가 있을 境遇에 記念으로 보이던 科擧. 三代太宗元年(1401)에 처음 실시되어
                       본디 임금의 등극을 축하하는 의미로 卽位년 또는 이듬해 實施하였으나, 14대 宣祖때부터 擴大되어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실시되었음.
  ⊙ 정시(庭試) : 나라에 경사가 있을 시 대궐 안마당에서 보이던 과거.
  ⊙ 별시(別試) : 조선조때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특별히 보이던 과거. 世宗元年(1419)에 처음으로 시작.
  ⊙ 식년(式年) : 子,卯, 午,酉등의 干支가 들어있는 해. 즉 甲子,丁卯, 丙午,癸酉년 등으로 조선조때도 이 해가 돌아
                        오면 과거를 보이며 호적조사(戶籍調査)를 하였다. 3년마다 돌아옴.
  ⊙ 감시(監試) : (國子監試) 조선조에 생원, 진사를 뽑던  과거. 별칭 司馬試(小科).
  ⊙ 친시(親試) : 과거를 보일 때 임금이 몸소 나와서 시험을 보임..
  ⊙ 전시(殿試) : 조선조 때 복시(覆試)에서 선발(選拔된 사람에게 왕이 몸소 乙,丙科로 등급을 정하였음. 고려 때
                        부터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조선조 때 제도화 되었음.
  ⊙ 중시(重試) : 문과급제 당하관(堂下官)을 위하여 둔 과거. 고려 16대 예종(睿宗) 17년에 최초로 실시. 조선조 세종
                        9년(1427)에 제도화되었으며 10년에 한 번씩 실시하여서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당상(堂上) 정3
                         품(正三品)으로 품계를 올려주었음.
  ⊙ 갑과(甲科) : 문과복시(文科覆試) 합결자에게 예조(禮曹)에서 전시(殿試)를 보여 성적에 따라 나누던 3등급의
                        하나. 성적순에 따라 甲, 乙, 丙科로 구분하여 정원은 3人인데 1등급은 장원랑(壯元郞:從6品), 2등
                        급은 방안랑(榜眼郞:正7品), 3등급은 탐화랑(探花郞:從7品).
  ⊙ 을과(乙科) : 조선조 때 문과복시(文科覆試) 합격자를 예조(禮曹)에서 전시(殿試)를 보여 성적 제2위로 7명을
                        뽑았다.
  ⊙ 병과(丙科) : 문과복시(文科覆試) 합격자를 예조(禮曹)에서 전시(殿試)를 보여 성적 제2위로 23명을 뽑았다.

    - 과거제도의 기원(起源)
      과거의 발생지는 중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과거가 실시된 것은 고려 광종(光宗)9년(958)부터이다. 당시 중국 후주(後周)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 온 쌍기(雙冀)라는 사람의 건의로 관리 등용의 길로 과거를 실시하여 널리 인재를 구하는 방법이었으니 지금의 보통 고등고시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 국가고시(國家考試)이다.

    - 과거와 교육제도
      조선의 과거와 교육제도는 한마디로 말해서 교육은 과거에 응시하기 위하여 시키는 외에 다른 목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앙에 국립대학으로 성균관(成均館)이 있었고, 국립고등학교격으로 사학(四學 : 東西南中에 세운 학교)이 있어 소위 양반(兩班)집 자제만을 입학시켜 과거에 급제할 수 있는 준비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각 지방에는 공립중학교격인 향교(鄕校)가 있어 지방 양반 자제들을 모아 교육하였고, 그 외에 사립초증중학교에 해당하는 글방(書堂)이 있어 중인(中人) 상인(常人)들의 자제들을 모아 교육하는데, 이것이 모두 과거에 응시하기 위한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과거급제(科擧及第)의 특권(特權)
      과거에 응시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게 됨에는 다음과 같은 특권이 부여(賦與)된 까닭이라 하겠다. 즉 各 道 監營에서 행하는 향시(鄕試)나 중앙에서 실시하는 생진과(生進科)의 초시(初試)에만 급제하면 이초시김초시박초시하여 우대하였고, 중앙에서 행하는 생진과에 급제하면 이생원김생원박생원 또는 이진사김진사박진사라 하여 살인죄 외의 죄는 체포(逮捕나 감금(監禁)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급제한 사람이 살고 있는 부락 앞에는 소도(蘇塗)나무를 높다랗게 세웠는데 그것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시로서, 그 부락을 지날 때는 일반인은 경의를 표하며,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은 말에서 내렸으니 과거에만 급제하면 그야말로 지상의 자유인으로서 치외법권적인 특권계급에 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 식년문 초시(式年文科 初試) 정수(定數
      ㅇ 한성부(漢城府) : 180 인
      ㅇ 충청도(忠淸道) :  25 인
      ㅇ 경상도(慶尙道) :  30 인
      ㅇ 전라도(全羅道) :  25 인
      ㅇ 강원도(江原道) :  15 인
      ㅇ 황해도(黃海道) :  10 인
      ㅇ 평안도(平安道) :  13 인
      ㅇ 함경도(咸鏡道) :  10 인.      통독(통독) :  38 인

    - 생진초시(생진初試) 정수(定數
      ㅇ 한성부(漢城府) : 268 인 終同
      ㅇ 충청도(忠淸道) :  90 인 終同
      ㅇ 경상도(慶尙道) : 100 인
      ㅇ 전라도(全羅道) :  98 인 終同
      ㅇ 강원도(江原道) :  45 인
      ㅇ 황해도(黃海道) :  35 인
      ㅇ 평안도(平安道) :  45 인
      ㅇ 함경도(咸鏡道) :  35 인
      ㅇ 경승보(京陞補) :  30 인
      ㅇ 합 제 (合 製 )   :  48 인

    - 과거급제와 봉고제(奉告祭)
      이러한 특권(特權)이 부여(賦與)된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과거에 급제하면 선조의 절대적(絶對的)인 도움이라 하여 급제(及第)하고 돌아오면 우선 자기 조상의 분묘(墳墓)를 찾아 다니며 봉고제(奉告祭)를 지냈는데 이것을 소분(掃墳)이라고도 한다.
      만일 자기 집이 빈한(貧寒)하여 봉고제(奉告祭)를 지낼 형편이 못되는 경우에는 친척들의 주선으로라도 성대(盛大)히 거해(擧行)하는 것이 통례(通例)로 되어 있었다. 이러함으로써 중인(中人)이 일약 양반행세(兩班行勢)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신분계급(身分階級)을 약술(略述)하면 다음과 다.
      ㅇ 중앙(中央)
          ①  양반(兩班)‥‥문무백관(文武百官)
          ②  중인(中人)‥‥醫·譯·算·律·陰陽科로 守令이 되는 자.
          ③  상인(常人)‥‥雜職·胥吏·市民 等
          ④  천인(賤人)‥‥日守·雜將·皀隸·澮軍·水軍·烽燧·軍騎保 등
      ㅇ 지방(地方)
          ①  양반(兩班)‥‥儒鄕·儒林
          ②  중인(中人)‥‥將校·中軍·監官·執事 등
          ③  상인(常人)‥‥衙典·六房胥吏·畵員 등
          ④  천인(賤人)‥‥奴婢·官奴·唱妓·使令·軍卒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