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에 관한 일반 상식

1. 문반(文班)의 내외직(內外職)
   문반(文班)의 벼슬자리는 크게 내직(內職)과 외직(外職)으로 구분된다. 내직(內職)은 중앙 각 관아의 벼슬인 경관직(京官職)을 말하고, 외직(外職)은 관찰사(觀察使), 부윤(府尹), 목사(牧使), 부사(府使), 군수(郡守), 현령(縣令), 판관(判官), 현감(縣監), 찰방(察訪) 등 지방 관직을 말한다. 내직(內職) 중에서도 옥당(玉堂)과 대간(臺諫) 벼슬을 으뜸으로 여겼은데, 옥당(玉堂)이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으로서부제학(副提學) 이하 음교(應敎), 교리(校理), 부교리(副校理), 수찬(修撰)등을 말하고, 대간(臺諫)은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관직으로서 사헌부(司憲府)의 대사헌(大司憲), 집의(執義), 장령(掌令), 지평(持平), 감찰(監察)과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 사간(司諫), 헌납(獻納), 정언(正言) 등을 가리킨다. 홍문관(弘文館),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을 삼사(三司)라 했는데 삼사(三司)의 관원은 학식과 인망이 두터운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이 통례였으므로 삼사(三司)의 직위는 흔히 "청요직(淸要職)"이라 하여 명예스럽게 여겼다. 따라서 삼사(三司)는 사림(士林)세력의 온상이 되기가 일쑤여서 조정의 훈신(勳臣)들과 자주 알력을 일으킴으로써 당쟁(黨爭)을 격화시키는 한 원인을 이루는 등 역기능(逆機能)을 빚기도 했다.

2. 호당(湖堂)
   족보(族譜)를 보면 높은 벼슬을 지낸 문신(文臣) 중에는 "호당(湖堂)"을 거친 이가 많이 눈에 뜨인다. 호당(湖堂)이란 독서당(讀書堂)의 別稱으로서 세종(世宗) 때 젊고 유능한 문신(文臣)을 뽑아 이들에게 은가(恩暇)를 주어 독서(讀書=공부)에 전념하게 한데서 비롯된 제도인데, 이를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하여 문신(文臣)의 명예로 여겼으며 출세 길도 빨랐다.

3. 문형(文衡) 대제학(大提學)
   문형(文衡)이란 대제학(大提學)의 별칭(別稱)인데 문형(文衡)의 칭호를 얻으려면 반드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과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그리고 성균관(成均館)의 대사성(大司成) 또는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겸직해야만 했다. 문형(文衡)은 이들 삼관(三館)의 최고 책임자로서 관학계(官學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직(職)이므로 더할 수 없는 명예로 여겼고 품계(品階)는 비록 판서급(判書級)인 正三品이었지만 명예로는 삼공(三公=영의정(領議政)·좌의정(左議政)·우의정(右議政)이나 육경(六卿=육조판서(六曹判書) 보다 윗길로 쳤다.
   이조 초기에는 藝文館에만 大提學을 두었으나 世祖 이후에는 弘文館에도 大提學을 두었다. 文衡은 國家最高의 文柄을 잡고 辭命·科試 등을 統轄하며 學問과 관계되는 일을 모두 管掌했다. 그러므로 학문과 人格이 아울러 뛰어난 인격자만이 오를 수 있었다. 大提學의 任期ㄴ는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한 終身까지 在任할 수  있으나 대개 선임자가 후임자를 추천하면 그대로 임용되는 것이 恒例였다.
   역사상 여러 벼슬에서 최연소(最年少) 기록을 세운 이는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인데, 그는 20세에 문과(文科)에 올라 23세에 호당(湖堂)에 들었고, 31세에 문형(文衡)이 되었으며, 38세에 벌써 좌의정(左議政)이 되어 42세에 영의정에 이르렀다.

4. 전조(銓曹)
   육조(六曹) 중에서도 문관(文官)의 인사정형(人事銓衡)을 맡은 이조(吏曹)와 무관(武官)의 인사 전형을 맡은  병조(兵曹)를 "전조(銓曹)'라 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관원은 "상피(相避)"라 하여 친척이나 인척되는 사람이 함께 전조(銓曹)에 벼슬하는 것을 막았다. 이를테면 明宗 때 신광한(申光漢)이 병조참판(兵曹參判)이 되고 송기수(宋麒壽)가 이조참판(吏曹參判)이 되었는데 서로 혼인관계가 있다하여 申光漢을 신형(申瑛)으로 교체했다.
   또 肅宗 때에는 홍명하(洪命夏)가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있을 때 홍중보(洪重普)가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는데 홍중보는 홍명하의 형 명구(命耉)의 아들이므로 대간(臺諫)이 이의를 제기하여 병조판서(兵曹判書)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다. 또 정승(政丞)은 병조판서(兵曹判書)를 겸직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박원종(朴元宗)·유성룡(柳成龍)·박순(朴淳)·김석주(金錫胄) 등이 예외로 겸직하였다. 병조(兵曹)는 군정(軍政) 일체를 맡아 상당히 권한이 컸으나 明宗 때 비변사(備邊司)가 상설되면서 임란(壬亂) 후로는 비변사(備邊司)가 군정을 관장하여 병조(兵曹)의 권한이 약화되었다.

5. 이조정랑(吏曹正郞)·좌랑(佐郞)의 권한(權限)
   이조(吏曹)에서도 특히 정랑(正郞=正五品)과 좌랑(佐郞=正六品)은 인사(人事)행정의 실무 기안자(起案者)로서 권한이 컸는데, 이들을 "전랑(銓郞)"이라 일컬었다. 전랑(銓郞)은 삼사(三司) 관원 중에서 명망이 특출한 사람으로 임명했는데, 이들의 임면(任免)은 이조판서(吏曹判書)도 간여하지 못했고 전랑(銓郞) 자신이 후임자를 추천하도록 되어있었으며, 전랑(銓郞)을 지낸 사람은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대체로 재상에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마련이었다. 宣祖 때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이 둘러싸고 다툰 것이 동인(東人)·서인(西人)의 분당(分黨)을 가져온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6. 계·사·직(階·司·職)과 행수법(行守法)
   관직의 정식 명칭은 "계(階)사(司)직(職)"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영의정(領議政)일 경우 "대광보국숭록대부=계·의정부=사·영의정=직(大匡輔國崇祿大夫=階·議政府=司·領議政=職)"이 된다. 계(階)는 곧 품계(品階), 사(司)는 소속 관청, 직(職)은 직위(職位)를 말한다.
   그런데 "행수법(行守法)"이라는 것이 있어서 품계(品階)가 높으면서 관직이 낮은 경우(階高職卑)에는 행(行)이라 하고, 반대로 품계(品階)는 낮은데 관직(官職)이 높을 경우(階卑職高)에는 "수(守)"라 하여, 소속 관청의 명칭 앞에 "행(行)" 또는 "수(守)"자를 붙이게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從一品인 숭정대부(崇政大夫)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正二品인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면 "숭정대부행이조판서(崇政大夫行吏曹判書)"라 하고, 반대로 從二品인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正二品직인 대제학(大提學)이 되면 "가선대부수홍문관대제학(嘉善大夫守弘文館大提學)"이라 했다. 고려시대의 인물에 "수태보(守太保)"니 "수사공(守司空)"이니 하는 관직이 많은 것도 모두 같은 예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중앙청의 계장급(係長級)인 사무관(事務官)이 서기관(書記官)의 보직인 과장(課長) 자리에 임명되면 "수(守)". 그 반대의 경우면"행(行)"이 되는 셈이다. 또 고려말~조선초의 인물에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이니 "검교정승(檢校政丞)"이니 하여 "검교(檢校)"란 용어가 많이 눈에 띄는데 이는 실제의 직책은 맡지 않은 임시직(臨時職), 또는 명예직(名譽職)을 말한다.

7. 기사(耆社=耆老所)
   "기사(耆社)"라는 것은 기로소(耆老所)의 별칭으로서 태조때부터 노신(老臣)들을 예우(禮遇)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다. 기사(耆社)에 들려면 정이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으로서 나이가 70세 이상이어야 했으며, 임금도 늙으면 여기에 참가하여 이름을 올렸다. 그러므로 기사(耆社)는 임금과 신하가 동참(同參)하는 것이라 하여 관청의 서열로도 으뜸으로 쳤으며, 조정에서는 매년 3월 삼짓날과 9월 중양절(重陽節)에 진치를 베풀었는데 이를 "기로연(耆老宴)" 또는 "기영회(耆英會)"라 했다. 따라서 기사(耆社)에 드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는데, 사천목씨의 목첨(睦詹)·목서흠(睦敍欽)·목래선(睦來善)의 삼대(三代)가 기사(耆社)에 연입(連入)하여 이 방면에 기록을 세웠다. 기사(耆社)에 들려면 반드시 문과(文科)를 거친 문관(文官)이어야 했으며, 무관(武官)이나 음관(陰官)은 들 수 없었다. 미수(眉?) 허목(許穆) 같은 이는 정승을 지내고 나이 80세나 되고서도 문과(文科)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기사(耆社)에 들지 못하다가 신하들의 주청으로 뒤늦게 기사(耆社)에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문과(文科)를 거치지 않은 음관(陰官)이나 무관(武官) 또는 나이 70세가 되지 않은 사람도 기사(耆社)에 들었는데, 권희(權僖)·김사형(金士衡)·이거역(李居易)·이무(李茂)·조준(趙浚)·최윤덕(崔潤德)·최항(崔恒) 등이 그런 예이다.

8. 치사(致仕)와 봉조하(奉朝賀)
   옛날에는 당상관(堂上官) 正三品 이상의 관원으로 나이 70세가 되면 치사(致仕)를 허락했는데, 치사(致仕)란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봉조하(奉朝賀)"란 칭호를 주고 종신(終身)토록 그 품계에 알맞는 봉록(俸祿)을 주었고, 국가적인 의식에 조복(朝服)을 입고 참여하게 했다. 봉조하(奉朝賀)의 정원(定員)은 처음에는 15명으로 정했었으나 뒤에는 일정한 정원(定員)을 두지 않았다. 이런 제도는 睿宗 때 처음 시행되었는데, 처음으로 봉조하(奉朝賀)가 된 사람은 홍달손(洪達孫)·최유(崔濡)·안경손(安慶孫)·이몽가(李蒙哥)·유숙(柳淑)·유사(柳泗)·배맹달(裵孟達)·정수충(鄭守忠)·한서구(韓瑞龜)·송익손(宋益孫)·유한(柳漢)·함우치(咸禹治)·한보(韓堡)·윤찬(尹贊)·한치형(韓致亨) 등이다.

9. 궤장(几杖)
   그러나 나이 70세가 넘고서도 정사(政事) 때문에 치사(致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 중에서도 정일품관에게는 임금이 특별히 "궤장(几杖)"을 하사(下賜)했는데, "궤(几)"는 팔을 괴고 몸을 기대는 안석이고 "장(杖)"은 지팡이를 말한다. 궤장(几杖)을 하사할 때는 임금이 친히 잔치를 베풀어 주었는데 이를 "궤장연(几杖宴)"이라 했다. 그래서 "입기사(入耆社)"니 "봉조하(奉朝賀)"니 "사궤장(賜几杖)"이니 하는 것을 큰 영예로 여겨졌으므로 족보(族譜)에까지 그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10. 시호(諡號)(諡號文字의 定義)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 중에서 正二品 이상의 관직(官職)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시호(諡號)를 주었는데, 뒤에는 범위가 확대되어 제학(提學)이나 유현(儒賢)절신(節臣) 등은 正二品이 못 되어도 正三品 이상의 증직(贈職)을 내리고 시호(諡號)를 주었다. 시호(諡號)를 정하는 절차는,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이의 행장(행장)을 적은 시장(諡狀)을 예조(禮曹)에 제출하면 예조(禮曹)에서 이를 심의한 뒤 봉상시(奉常寺)를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보내어 시호(諡號)를 정하게 된다. 시호(諡號)를 정하는 법으로는 "주공시법(周公諡法)"이니 "춘추시법(春秋諡法)"이니 하여 중국 고대 이래의 사법이 많이 적용되었던 듯하다. 시호에 사용된 글자는 문(文)충(忠)정(貞)공(恭)양(襄)정(靖)효(孝)장(莊)안(安)경(景)익(翼)무(武)경(敬) 등등 120자인데, 한 자 한 자마다 정의(定義)가 있어서 생전의 행적(行蹟)에 알맞는 글자를 조합하여 두자로 만들고 시호(諡號) 아래 공(公)자를 붙이어 부른다.
   시호(諡號)에 사용된 글자 중 대표적인 글자의 정의(定義)를 그 대표적인 것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經天緯地 道德博聞 敏而好學 博學好文 勤學好問 博學多識 慈惠愛民 忠臣愛人 剛柔相濟
愍民惠禮 修德來遠 施而中禮 修治班制

危身奉上 事君盡節 慮國忘家 推賢盡忠 廉方公正 險不避難 臨亂不忘國 臨患不忘國

淸白守節 淸白自守 直道不撓 不隱無屈 大慮克就

因事有功 有功征伐 甲胄有勞 辟地有德

寬樂令終 恭己安民 恭己鮮言 柔德安衆 仕不躁進 正容寡言

溫良好樂 中心敬事 慈仁愛人

慈惠愛親 繼志成事 能養能恭 慈人愛人 五宗安之 秉德不回 大慮行節 協時榮享

履正志和 嚴親臨民 武能持重 威而不猛 勝敵志强 致果殺賊 好勇致力

好和不爭 寬柔和平 與人無兢 兆民寧賴

出言有文 溫克令儀 法度大明 敬愼高明

執事有制 有剛治紀 法度皆理

折衝禦侮 克定禍亂 剛强以順 保大定功 威强敵德 刑民克服 陰僞寧眞

夙夜儆戒 夙興恭事 令善典法 善合法度

柔質滋仁 柔質慈民 柔質安民 心性慈祥

守義不屈 强毅果敢 致果殺敵 追補前過 强而能斷

先君後己 先公後己 見義能忠 行義能終 制事合義 取而不貪

心能制義 制事合義 制事得義

     시호(諡號)를 받는다는 것은 가장 영예로운 표창으로서 종중되어 족보(族譜)에는 물론 묘갈(墓碣) 같은데도 기입되었다. 따라서 어떤 시호(諡號)를 받느냐 하는 것은 그 자손과 일족(一族)의 명예에 관계되는 문제이므로 시호(諡號)의 글자를 둘러싸고 시비와 논란이 많았으며, 뒷날에 이르러 개시(改諡)를 요구하는 일도 많았다. 시호(諡號) 중에도 "文"자와 "忠"자가 들어간 시호(諡號)를 가장 존귀하게 여겼는데, 특히 숭문(崇文)주의로 인한 문반우위(文班優位)의 시대였던 만큼 "文"자 시호(諡號)를 최고의 영예로 여겨 자손들이 이를 자랑으로 삼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다.

   유현(儒賢)들의 시호(諡號
     한 편 임금의 특별한 교시(敎示)가 있을 때는 자손의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않고 홍문관(弘文館)과 봉상시(奉常寺)에서 직접 시호(諡號)를 의정(議定)했는데, 이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에게 "文純"이란 시호(諡號)를 내려 준데서 비롯했다(?). 正二品 벼슬이 못되었으면서 시호(諡號)를 추증받은 유현(儒賢)으로는 김굉필(金宏弼=文敬公)정여창(鄭汝昌=文獻公)서경덕(徐敬德=文康公)조광조(趙光祖=文正公)김장생(金長生=文元公) 등이 있다.
   무인(武人)의 시호(諡號)
     무인(武人)의 시호(諡號)로는 "忠武"가 가장 영예로움직하며, 특히 "忠武公"하면 이순신(李舜臣)장군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 밖에도 조영무(趙英茂)남이(南怡)구성군준(龜城君浚)정충신(鄭忠信)김시민(金時敏)김응하(金應河)이수일(李守一)구인후(具仁厚) 등 "忠武公"이 8명이나 있다.

11. 문음(門蔭)과 천거(薦擧)
     "문음(門蔭)"은 글자 그대로 문벌(門閥)의 음덕(陰德)으로 벼슬하는 것인데 높은 관직자나 명신(名臣)·공신(功臣)·유현(儒賢)·전망자(戰亡者)·청백리(淸白吏) 등의 자손들을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임용하는 제도를 말한.
     또 "천거(薦擧)"는 사립(士林) 중에서 학행(學行)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재야 인사를 현직 고관이나 지방관의 추천으로 벼슬에 발탁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문음(門蔭)"과 "천거(薦擧)"를 아울러서 음사(蔭仕)·음직(陰職) 또는 남행(南行)이라 일컬었다.

12. 은일(隱逸)
     숨어 사는 학자로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선비에게 임금이 특별히 벼슬을 내리는 것으로서 과거를 보지 않았어도 높은 벼슬을 제수한다.

13. 요직(要職) 및 기타 주요명칭(主要名稱)
   추증(追贈) : 추증이라 함은 본인이 죽은 뒤에 벼슬을 주는 제도로서 가문을 빛내게 하는 일종의 명예직인데, 추증의 기준을 보면 종친과 문무관으로서 실직(實職) 二品인 자는 그의 3대를 추증한다. 그 부모는 본인의 품계(品階)에 준하고, 조부모·증조부모는 각각 일품계씩 강등(降等)한다. 죽은 처는 그 남편의 벼슬에 준한다. 대군(大君)의 장인은 正一品, 왕자인 군(君)의 장인은 從一品을 증직(贈職)하고, 친·공신(親·功臣)이면 비록 벼슬의 직위가 낮아도 正三品을 증직한다. 일등공신의 아버지는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을 추증하고, 이등공신의 아버지는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을 추증하고, 三等公臣의 아버지는 순충보조(純忠·補祚功臣)공신을 추증하여 모두 군(君)에 봉한다. 왕비의 죽은 아버지에게는 영의정을 추증하고, 그 이상의 3대는 따로 정한 국구추은(國舅推恩)의 예에 의한다. 세자빈(世子嬪)의 죽은 아버지에게는 좌의정을 추증하고, 대군의 장인에게는 우의정을, 그리고 왕자의 장인에게는 좌찬성을 추증한다.
   증시(증시) : 벼슬 길에 있던 자가 죽은 후 나라에서 시호(諡號)를 내리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종친과 문무관으로서 정이품 이상의 실직에 있던 자에게는 諡號를 추증한다. 그러나 친공신이면 비록 직품이 낮다고 하더라도 諡號를 추증한다. 대제학의 벼슬은 정이품인데 이에 준하여 비록 종이품인 제학이라도 또한 諡號를 추증한다. 덕행과 도학이 고명한 유현(儒賢)과 절의(節義)에 축은 사람으로서 현저한 자는 비록 정이품이 아니더라도 특히 諡號를 내린다.
   대원군(大院君) : 왕(王)의 대(代)를 이을 적자손(嫡子孫)이 없어 방계(傍系) 친족(親族)이 왕의 대통(大統)을 이어받을 때 그 왕의 친부(親父)에게 주는 직임(職任).
   부원군(府院君) : 왕의 장인(丈人) 또는 일등공신(一等功臣)에게 주던 칭호(稱號)로서 받은 사람의 관지명(貫地名)을 앞에 붙인다.  例 : 수성부원군(隋城府院君)
   재상(宰相) : 국왕을 보필(補弼)하고 문무백관(文武百官)을 지휘감독(指揮監督)하는 지위에 있는 二品以上의 관직을 통칭(通稱)한다.
   원상(院相) : 왕이 승하(昇遐)하면 잠시 정부(政府)를 맡던 임시직(臨時職). 신왕(新王)이 즉위(卽位)하였으나 상중(喪中)이므로 졸곡(卒哭)까지와, 혹은 왕이 어려서 정무(政務)의 능력이 없을 때 대비(大妃)의 섭정(攝政)과 함께 중망(衆望)이 있는 원로재상급(元老宰相級) 또는 원임자중(原任者中)에서 몇 분의 원상(院相)을 뽑아 국사(國事)를 처결(處決)한다.
   삼공육경(三公六卿) : 이조(李朝) 때 영의정(領議政)·좌의정(左議政)·우의정(右議政) 등 삼정승(三政丞)을 삼공(三公)이라 한다.
   사(事) : 영사(領事)·감사(監事)·판사(判事)·지사(知事)·동지사(同知事) 등의 관직(官職)은 관사(官司) 위에 영(領)·감(監)·판(判)·지(知)·동지(同知)를 두고 사(事)는 관사(官司) 밑에 쓴다.  예 :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제수(除授) : 벼슬을 내릴 때에 일정한 추천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왕이 직접 임명(任命)하거나 승진(昇進)시키는 것. 이를 제배(除拜)하고 한다.
   원종공신(原從功臣) : 각등공신(各等功臣) 이외(以外)에 소공(小功)이 있는 자(者)에게 주는 칭호(稱號)
   검교(檢校) : 고려말(高麗末) 이조초(李朝初)에 정원이상(定員以上)으로 벼슬자리를 임시(臨時)로 늘리거나 공사(公事)를 맡기지 아니하고 이름만 가지게 할 경우 그 벼슬 앞에 붙던 말. 즉 임시직(臨時職) 또는 명예직(名譽職)이다. 例 :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三品以上 官에만 썼다)
   대제학(大提學) : 대제학을 문형(文衡)이라고도 한다. 문형(문형)은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나 지사(知事)를 겸임(兼任)해야만 한다. 대제학(大提學)은 正二品의 관계(官階)이지만 학문(學文)과 도덕(道德)이 뛰어나고 가문(家門)에도 하자가 없는 석학(碩學)·석유(碩儒)만이 오를 수 있는 지위(地位)인데, 학자(學者)와 인격자(人格者)로서의 최고지위(最高地位)라고 할 수 있어 본인은 물론 일문(一門)의 큰 명예로 여기었다. 대제학 후보 선정은 전임(前任) 대제학이 후보자(候補者)를 천거하면 이를 삼정승(三政丞)·좌우찬성(左右贊成)·좌우참찬(左右參贊)·육조판서(六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이 모여 다수결(多數決)로 정한다. 대제학(大提學)은 본인이 사임(辭任)하지 않는 한 종신직(終身職)이다.
   청백리(淸白吏) : 청백리(淸白吏)는 그의 인품(人品)경력(經歷)치적(治績) 등이 능히 모든 관리(官吏)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어야만 청백리(淸白吏)로 녹선(錄選)된다. 청백리(淸白吏)로 뽑히면 품계(品階)가 오르고 그 자손(子孫)은 음덕(蔭德)으로 벼슬할 수 있는 특전(特典)이 있다. 따라서 본인은 물론 일무(一門)의 큰 영예로 여기었다. 청백리(淸白吏)는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한성부(漢城府)의 二品이상의 관원과 대사헌(大司憲)대사간(大司諫) 등이 후보자(候補者)를 엄격(嚴格)한 심사(審査)를 거쳐 왕의 재가(裁可)를 얻어 녹선(錄選)한다.
   불천위(不遷位) : 덕망(德望)이 높고 국가에 큰 공로(功勞)가 있는 사람에게 영원(永遠)히 사당(祀堂)에 모시도록 국가(國家)에서 허가(許可)한 신위(神位)
   홍문록(弘文錄) : 홍문관의 장(長)은 영사(領事)라 하여 영의정이 예겸(例兼)하고 그 밑에 대제학(大提學)제학(提學)은 타관(他官)이 겸직(兼職)하고 부제학(副提學)직제학(直提學)은 도승지(都承旨)가 겸하고, 전한(典翰=從三品) 이하 응교(應敎=正四品) 등 正九品 정자(正字)까지는 다 경연(經筵)을 겸대(兼帶)하였는데, 부제학(副提學)에서 부수찬(副修撰=從六品)까지는 또 지제교(知製敎)를 겸하였다. 지제교(知製敎)는 왕의 교서(敎書)를 제술(製述)하는 소임인데 이 외에 대제학(大提學)이 이조판서와 상의하여 문관(文관) 六品 이상 중에서 초계(抄啓)하여 지제교(知製敎)를 겸임케 하는 일도있어 전자(前者)와 내짖교(內知製敎) 후자(後者)를 외지제교(外知製敎)라 했다. 또 홍문관(弘文館)은 경연관(經筵官)을 예겸(例兼)한데다가 직사중(職司中)에도 왕의 고문(顧問)에 응하는 조항(條項)이 있어 王의 측근에서 조정의 득실(得失)을 논하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사헌부· 사간원과 아울러 언관(言官)의 삼사(三司)라고 한다. 홍문관원(弘文館員) 즉 옥당(玉堂)의 임(任)은 이와 같이 청요(淸要)하므로 그 전선(銓選) 또한 심신(審愼)을 극(極)하여 문과방목(文科榜目)이 나오면 홍문관의 七品 이하관이 모여 그 중에서 옥당(玉堂) 적임자를 뽑아 부제학(副提學) 이하 응교(應敎)· 교리(校理)· 수찬(修贊)등이 거기에 권점(圈点)을 부치니 이것이 "홍문록(弘文錄)" 또는 "본관록(本館錄)"이란 것이며, 이것을 다시 의정(議政)· 찬성(贊成)· 참찬(參贊)· 이조삼당상(吏曹三堂上)들이 모여 제2차 권점(圈点)을 부치니 이것을 "도당록(都堂錄)"이라 했는데, 이것을 왕께 상주하여 차점이상(次点以上)의 득점자(得点者=定員數 內의)를 차례로 교리(校理)· 수찬(修撰)에 임명하였다.
   한림(翰林=正九品) : 예문관(藝文館)의 봉교(奉敎=正七品) 이하를 한림(翰林)이라고 하는데 좁게는 최말직(最末職)인 검열(檢閱)의 통칭이니 한림(翰林)의 직품(職品)이 비록 최하직(最下職)이나 그 직(職)이 청환(淸宦)인데다가 실제 직무가 겸춘추관기사관(兼春秋館記事官)으로서 사관(史官)노릇을 하기 때문에 직위에 맞지 않게 중요시(重要視)되어 이의 선임(選任)은 가장 신중을 극(極)하고 따라서 그 영예(榮譽)로움도 대단하였다. 즉 문과(文科)급제의 방이 나면 말석(末席)의 예문관원(藝文館員)이 주장하여 한림의 후보자가 될 만한 사람을 가려내어 동료와 더불어 밀실(密室)에서 천차(薦次)를 평정(評定)하고 이어 증경한림(曾經翰林)과 예문(藝文)· 홍문(弘文) 양관(兩館) 당상(堂上)에게 회시(廻示)하여 모두가 이의(異議)가 없은 뒤에야 설단(設壇)· 초향(楚香)하고 천지에 서고(誓告)하기를 "秉筆之任 國家最重 薦非其人 必有其殃(병필지임 국가최중 천비기인 필유기앙)"이라 하고, 다음 삼정승(三政丞)과 찬성(贊成)· 참찬(參贊)· 양관제학(兩館提學)· 이조당상(吏曹堂上)이 모여 앉아 피천인(被薦人)으로 하여금 강목(綱目)· 좌전(左傳)· 송감(宋鑑)등 서(書)를 시강(試講)케 하여 석차를 정하였다. 이것은 함림(翰林)이 사관(史官)으로서 만고시비(萬古是非)의 권(權)을 잡는 사람이기에 공정(公正)하고 유능(有能)한 인물(人物)을 추천해야 한다는 조심성에서 나온 것이다. 英祖 17년에 구천법(舊薦法)이 당론(黨論)과 관섭(關涉)하는 폐가 있다하여 이를 폐하고, 새로 증경한림삼인(曾經翰林三人)이 모여 문과방목(文科榜目)중에서 한림(翰林)후보자를 뽑아내어 권점(圈点)을 쳐서 2인 이상의 투점(投点)을 얻은 자로 취(取)하니 이른 바 "한림합권(翰林合圈)"이요, 한림(翰林)이 비원(備員)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政府)에서 이를 行하니 이것이 소위 "도당회권(都堂會圈)"이다. 이리하여 적임자로 약간명을 선정하고, 다시 그 중에서 몇 사람만을 득점 순대로 보임(補任)하였는데, 비록 보직(補職)을 못 받더라도 권내(圈內)에 참입(參入)된 것만으로도 일종의 자격을 인정받은 것으로 긍지가 컸으니 한림(翰林)은 이와 같이 영광(榮光)스러운 것이다.
   감찰(監察=從六品) : 비록 사헌부(司憲府)의 최말단직(最末端職)이나 독립된 감찰청(監察廳)에 屬하여 외국으로의 사행(使行), 조정(朝廷)에서의 예회(禮會), 국고(國庫)의 출납(出納), 과학현장(科學現場), 제사절차(祭祀節次) 등 모든 것에 다 임검(臨檢)하여 위례범칙(違例犯則)을 계찰(戒察)할 수 있는 권한이 대단하여, 감찰(監察)이라면 누구나 벌벌 떨었다 하며, 비록 왕자대군(王子大君)이나 귀족명사(貴族名士)들도 이들이 연몌(聯袂)·출동(出動)할 때에는 하마(下馬) 회피(廻避)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임용(任用)에는 매우 신중극택(愼重極擇)하여 한 번 선임(選任)되면 반드시 추의누색(麤衣陋色=土色團領을 입음)· 단모폐대(短帽弊帶)· 박마파안(樸馬破鞍)으로 하도록 되어있다. 정원은 24명.
   삼사(三司) : 이조시대의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을 합칭(合稱)한 말로서 삼사(三司)의 관원(官員)은 학식과 인망(人望)이 두터운  사람을 임명한다. 국가 중대사에 관하여는 연합(連合)하여 삼사합계(三司合啓)를 올리는 일과 합사복합(合司伏閤)이라 하여 소속 관원이 궐문(闕門)에 엎드려 왕의 청종(聽從)을 강청(强請)하기도 한다.
   사패지(賜牌地) : 고려· 이조 때 국가에 공(功)을 세운 왕족과 관리에게 주는 토지. 토지의 수조권(收租權)을 개인에게 이양한 것으로 일대한(一代限)과 삼대세습(三代世襲)의 두 종류가 있다. 사패(賜牌)에 가전영세(可傳永世)의 명문(明文)이 있는 것은 삼대세습(三代世襲)을 허락한 것이고 이러한 명문(明文)이 없으면 일대한(一代限)으로 국가가 환수(還收)키로 한 것이나, 환수하지 않고 대대로 영세사유화(永世私有化)가 됐다. 선조 이후에는 사패기록(賜牌記錄)만 주고 실제로 토지는 사급(賜給)하지 않았다.
   예장(禮葬) : 正一品 이상의 문무관 및 공신이 卒하면 국가에서 예의(禮儀)를 갖추어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일종의 국장(國葬)이다. 이 외의 예장 범위는 대체로 참찬(參贊)·판서(判書)를 지낸 사람 또는 특지(特旨)가 있는 경우에 한하였다.
   장일(葬日) : 관원이 卒하면 四品 이상은 3개월, 五品 이하는 1개월이 지나야 장사(葬事)한다.
   묘지(墓地) : 묘지는 경계(境界)를 정하여 경작(耕作)목축(牧畜)을 금하고 묘지 한계(限界)는 일품은 분묘를 중심으로 사면구십보(四面九十步), 이품은  사면팔십보(四面八十步), 삼품은 사면칠십보(四面七十步), 사품은 사면육십보(四面六十步), 오품은 사면오십보(四面五十步), 칠품 이하와 생원(生員)·진사(進士)는 사면사십보(四面四十步), 서인(庶人)은 사변십보(四面十步)
   배향(配享) : 공신(功臣)명신(名臣) 또는 학덕(學德)이 높은 학자(學者)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나 문묘(文廟)서원(書院) 등에 향사(享祀)하는 일.
   치제(致祭) : 국가에 공로(功勞)가 많은 사람 또는 학행(學行)과 덕만(德望)이 높은 사람에게 사후 국왕(死後 國王)이 내려주는 제사(祭祀).
   가자(加資) : 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의 품계(品階)에 올려줌을 말한다.
   정려(旌閭) : 특이(特異)한 행실(行實)에 대한 국가의 표창(表彰). 충신(忠臣)·효자(孝子)·열녀(烈女)들을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表彰)하였다..
   당상관(堂上官) : 관계(官階)의 한 구분(區分). 문관은 正三品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 무관(武官)은 正三品인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상을 말한다.
   당하관(堂下官) : 문관(文官)은 正三品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이하 從九品인 장사랑(將士郞)까지, 무관(武官)은 正三品인 어모장군(禦侮將軍) 이하 從九品인 전력부위(展力副尉)까지를 통칭한다.
   참상참하(參上參下) : 당하관(堂下官) 중 六品以上은 참상(參上), 七品以下는 참하(參下) 또는 참외(參外)라고도 한다.
   승육(陞六) : 七品이하의 관원(官員)이 六品 즉 참상(參上)으로 오르는 것.
   낭청(郎廳) : 각 관사(官司)에 근무하는 당하관의 총칭이다.
   권지(權知) : 새로 문과에 급제(及第)한 사람을 승문원(承文院) 교서관(校書館)에 분속(分屬)하여 권지(權知)라는 명칭(名稱)으로 실무(實務)를 수습(修習)하게 한다. 즉 벼슬 후보자(候補者)
   서사(筮士) : 처음으로 관직에 나감.
   각 官의 임기(任期) : 중앙 각관사(各官司)의 六品이상 당상관은 30월, 병조판서·관찰사·유수(留守)는 24월, 수령(守令)은 30월~60월, 병사(兵士)·수사(水士)는 24월.
   사림(士林) : 벼슬하지 않고 은거(隱居)하는 덕망(德望)이 높은 선비.
   유학(幼學) : 사대부(士大夫)의 자손으로서 벼슬하지 아니한 선비.
   통어사(統禦使) : 이조 후기에 경기(京畿)·충청(忠淸)·황해도(黃海道) 등 삼도(三道)의 수군(水軍)을 통할(統轄)하는 무관직(武官職). 경기수사(京畿水使)가 겸직(兼職)한다.
   통제사(統制使) :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설치(設置). 충청(忠淸)·전라(全羅)·경상도(慶尙道) 등 삼도(三道)의 수군을 통할하는 무관직. 전라수사가 겸직(兼職)한다.
   방어사(防禦使) : 인조 때에 경기·강원· 함경·평안도 등 요소를 방어하기 위하여 둔 벼슬. 지방수령이나 변장(邊將)이 겸함.
   도순무사(都巡撫使) : 이조 때 전시(戰時)나 지방에서 반란(叛亂)이 일어났을 때 군무(軍務)를 통할(統轄)하는 임시관직(臨時官職)
   체찰사(體察使) : 지방에 군란(軍亂)이 있을 때 왕의 대신으로 그 지방에 나아가 일반 군무를 두루 총찰(摠察)하는 임시관직(宰相이 兼任함)
   좨주(祭酒) : 성균관(成均館)의 당상관직(堂上官職)으로 보(補)하되 학행(學行)과 명망(名望)이 높은 선비에게 제수(除授)한다.
   암행어사(暗行御史) : 왕이 신임(信任)하는 젊은 당하관 중에서 뽑아 비밀히 지방에 보내 현직전직지방관의 선행과 비행, 백성의 사정(事情)·민정(民情)·군정(軍情)의 실정, 숨은 미담(美談)·열여(烈女)·효자(孝子)의 행적(行績) 등을 조하 보고하게 하는 임시직(臨時職). 어사(御史)로 뽑혀 왕에게서 봉서(封書)를 받으면 집에 들리지 않고 측시 출발하며, 역마(驛馬)와 역졸(驛卒) 등을 이용할 마패(馬牌)를 받는다. 필요할 때에는 마패(馬牌)로써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御史出頭) 비행(非行)이 큰 수령이면 즉시 봉고파직(封庫罷職)하며, 지방관(地方官)을 대신하여 재판(裁判)도 한다. 부모상(父母喪)이나 국장(國葬)이 있어도 임무 중에는 돌아오지 못한다.
   원(園) : 왕세자 또는 왕세손으로 책봉된 뒤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한 분과, 왕의 생모(生母)로 선왕비(先王妃)가 아닌 분의 묘소(墓所).
   내명부(內命婦) : 내명부라 함은 궁 안에 있는 여인의 벼슬을 말함인데 여기에 상궁(尙宮) 이하는 궁직(宮職), 즉 궁녀의 직함이고 빈(嬪)으로부터 숙원(淑媛)까지는 광의 후궁(後宮)인데, 그 벼슬 이름과 직품(職品)은 별표를 참조하기 바라며, 정(正)종(從) 각 9품으로 되어있으니 그 계단이 18계단이 있는 셈이다.
   외명부(外命婦) : 왕족 종친의 여자·처 및 문무관의 처로서 그 부직(夫職)에 따라 봉작을 받은 여자의 통칭. 왕족에는 공주·옹주·부부인(府夫人)·봉보부인(奉保夫人=유모)·군주(군주)·현주(縣主)가 있고, 종친의 처로는 부부인·군부인(郡夫人),등과  문무관의 처로는 정경부인·정부인·숙부인·숙인·영인·공인·의인·안인·단인·유인 등이 있다.  별표    그러나 서자(庶子)와 재가(再嫁)를 한 자에게는 작(爵)을 봉하지 아니하고 개가(改嫁)를 한 자의 봉작은 추탈(追奪)한다.  왕비의 친어머니, 세자의 딸과 종친으로서 이품 이상의 처는 읍호(邑號)를 병용(竝用)한다.
   호패(號牌) : 이조 때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 다니던 패(牌). 지금의 주민등록증과 같다. 표면에는 주소, 성명, 직업, 본관, 연령 등을 새기고 이면에는 발행관청명을 낙인(낙인)했다. 신분에 따라  아패(牙牌), 각패(角牌), 홍양목패, 소방목패, 대방목패로 구분되었다.
   자(字) : 가명(家名) 외에 붙이는 성인의 별명. 남자 20세가 되어 관례를 행하여 성인이 되면 성인식 때 자(字)를 지어 준다.

14. 사신(사신)의 종류
   ■ 정기사(定期使)
      ① 정조사(正朝使) : 매년 원단(元旦)에 중국으로 보내던 사신.
      ② 성절사(聖節使) : 중국 황제의 탄일(誕日)에 보내던 사신.
      ③ 천추사(千秋使) : 중국 황후의 탄일(誕日)에 보내던 사신.
      ④ 세폐사(歲幣使) : 매년 음력 10월에 공물(貢物)을 가지고 가던 사신.
      ⑤ 동지사(冬至使) : 매년 동지절(冬至節)에 보내던 사신
   ■ 임시사(臨時使)
      ① 사은사(謝恩使) : 중국 황제가 조선왕실이나 국가에 호의(好意)를 베풀었을 때 사례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
      ② 진하사(進賀使) : 중국 황실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
      ③ 주청사(奏請使) : 나랏일(國事)에 대하여 중국 황제에게 주청(奏請)할 일이 있을 때 보내던 사신.
      ④ 진주사(陳奏使) : 중국에 통고(通告)할 일이 생겼을 때 임시로 보내던 사신.
      ⑤ 변무사(辨誣使) : 중국에서 조선에 대하여 곡해(曲解)가 있을 때 訂正·解明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
      ⑥ 진위사(陳慰使) : 중국 황실에 상고(喪故)가 있을 때 조위차(弔慰)차 보내던 사신.
      ⑦ 진향사(進香使) : 중국 황실에 상고가 있어 보고(訃告)가 왔을 때 향(香)을 보내던 사신.
      ⑧ 부고사(訃告使) : 조선 왕실에 상고(喪故)가 있을 때 부고를 전하기 위해 보내던 사신.
      ⑨ 참복사(參覆使) :두 나라가 공동 처리할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상대국이 정한 지점으로 보내는 사신.
      ⑩ 원접사(遠接使) : 중국 사신을 먼곳까지 나가서 맞이하는 임시관직.
      ⑪ 반송사(伴送使) : 중국 사신을 호송(護送)하는 임시관직.
      ⑫ 관반사(館伴使) : 서울에 묵고 있는 외국사신 접대를 위해 임시 임명하는 正三品 벼슬.
      ⑬ 심양사(瀋陽使) 청국 심양(瀋陽=淸國首都)에 보내는 사신.
   ■ 국내사(國內使)
      ① 통신사(通信使) : 조선에서 일본에 보내던 외교사절(外交使節)
      ② 감진사(監賑使) : 진휼하는 일을 감독하게 하기 위하여 파견하는 임시관직.
      ③ 위유사(慰諭使) : 천재지변(天災地變) 기타 재난(災難)시 백성을 위무(慰撫)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관직.
      ④ 안무사(按撫使) : 지방에 변란(變亂)이나 재난(災難)시 왕명으로 파견되어 백성을 안무(按撫)하는
                                  임시관직.
      ⑤ 안핵사(按覈使) : 지방에 사건(事件)이 생겼을 때 안찰핵실(按察覈實)하게 하기위해 임명하던 임시직.
      ⑥ 정리사(整理使) : 동가(動駕)때 행재소(行在所)의 수리(修理)와 그밖의 일을 맡은 임시직(戶曹判書가 專任)
      ⑦ 돈체사(頓遞使) : 국장(國葬) 때 길에 주식(酒食)을 마련 군대와 인부 등에게 음식을 주는 일을 맡은
                                  임시직(判尹으로 任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