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편람 (四禮便覽)
예고(禮考)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장례(葬禮) 제례(祭禮)
예고(禮考)
  옛부터 동방에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으로 자처(自處)하고 살아온 우리 선조들은 우리에게 엄격하고도 자랑스러운 의례법도(儀禮法度)를 유산(遺産)으로 물려주었다. 이 유산은 다시 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번거롭기도 하고 또 갖가지 폐단(弊端)을 자초(自招)하기도 하였다.
  가례(家禮)에 대한 역사적 유래(由來)를 쓰려면 그 문헌(文獻)이 방대(尨大)하여 다 기록할 수 없으나, 주례(周禮)에서 가례(家禮)란 말이 쓰인 것은 이미 삼천년이 넘었고, 중국 송(宋)나라 주희(朱熹=朱子)가 가례(家禮)를 지은 후로부터 관(冠)·혼(婚)·상(喪)·제(祭)에 대한 예절(禮節)을 알게된 것같다. 이것을 일러서"주문공 가례(朱文公家禮)"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고구려, 신라, 백제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체계적(體系的)으로 제도화(制度化)하여 영조때에 도암 이재(陶菴 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이 나왔으며, 특히 조선 중엽(中葉)에 와서는 예론(禮論)으로 발전하였으나 사색당쟁(四色黨爭)을 일으킨 원인이 되기도 하여 전통에 통일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근본은 같으니, 유교(儒敎)를 바탕으로한 예의(禮儀)는 숭조이념(崇祖理念)과 충효정신(忠孝精神)에 크게 공헌한 것이 사실이다.
  언급했듯이 유명한 예학자(禮學者)들의 이론에 의하여 의례(儀禮)가 변천(變遷)을 거듭하여 옴에 따라 사례(四禮)가 상당히 다르게 전하여져 왔으며, 근세에 와서 일제 36년의 수난기(受難期)와 8.15광복(光復) 이후 민주주의 사회로 바뀌면서 우리의 현대 생활양식(生活樣式)이 급속히 서양풍속을 많이 따르게 됨으로 인하여, 인생 통과의례인 사례(四禮) 중에서 관례(冠禮)는 성년식이라 하여 그 절차와 과정상의 중요성이 상실되고, 혼례(婚禮) 또한 동양식도 아니고 서양식도 아닌 이상한 의식으로 바뀌어졌으며, 절차가 가장 까다롭고 번잡하고 이론(異論)이 많은 상장례(喪葬禮)도 차차로 간소화 되었고, 제례(祭禮)도 또한 효(孝)의 연장이라는 근본을 망각한 사례가 허다해젺다.
  정부에서는 오랫동안 말이 많고 폐단(弊端)도 많던 옛날의 가정의례를 간소화(簡素化)하여 1969년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으로 제정(制定) 공포(公布)하였고 지금은 건전가정의례준칙으로 개정되었으나 예의 근본을 깨닫게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다.
  이에 예기. 논어, 효경 등에 수록된 예의 근본과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예론을 수집하여 기존의 사례편람을 간단히 재정리하였으니 이를 참고로 우리 수성최씨 문중만이라도 서로 다른 절차나 이론(異論)에 통일을 기할 수 있다면 망외(望外)의 보람이라 할 것이다.

예고(禮考)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장례(葬禮) 제례(祭禮)